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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
손진태 | 온이퍼브 | 2016-01-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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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
손진태 | 온이퍼브 | 2016-01-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은 ‘국제문화사 刊(1948)’ 작품으로 여러 가지 한국 역사 ‘조선민족사관개론(1948)’ 및 ‘국사대요(1949)’ 등 일련의 해방 이후 기술한 것 중의 하나이다.
상고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대표적인 한국사의 흐름을 비교적 간략하게 요약한 것으로 사학자로서 예리한 민족 전체의 미래와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위기 속에서 우리의 자주적 민족주의사관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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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구한 역사의 꽃, 석조 문화재를 찾아서1
컬툰스토리 | 주식회사 태믹스 | 2014-06-0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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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구한 역사의 꽃, 석조 문화재를 찾아서1
컬툰스토리 | 주식회사 태믹스 | 2014-06-0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유구한 역사의 꽃, 석조 문화재를 찾아 떠나는 기행으로 다음과 같이 10개의 테마로 구성되었습니다. 1)내화리 삼층석탑, 2)상주 화달리 삼층석탑, 3)발산리 오층석탑, 4)단속사지 삼층석탑, 5)상동리 삼층석탑과 석불좌상, 6)왕궁리 오층석탑, 7)낙산사 칠층석탑, 8)서동리 삼층석탑, 9)보림사 삼층석탑과 석등, 10)서정리 구층석탑 등에 대한 최신 사진과 더불어 각 테마에 얽힌 재미있고 유익한 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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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구한 역사의 꽃, 석조 문화재를 찾아서2
컬툰스토리 | 주식회사 태믹스 | 2014-06-0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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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구한 역사의 꽃, 석조 문화재를 찾아서2
컬툰스토리 | 주식회사 태믹스 | 2014-06-0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유구한 역사의 꽃, 석조 문화재를 찾아 떠나는 기행으로 다음과 같이 10개의 테마로 구성되었습니다. 1)고도리 석불입상, 2)연동리 석조여래좌상, 3)발산리 석등, 4)북지리 마애여래좌상, 5)이은리 석불, 6)만복사지 석좌, 7)선림원지 부도, 8)선림원지 석등, 9)서산 마애삼존불상, 10)동본리 석조여래입상 등에 대한 최신 사진과 더불어 각 테마에 얽힌 재미있고 유익한 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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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구한 역사의 꽃, 석조 문화재를 찾아서3
컬툰스토리 | 주식회사 태믹스 | 2014-06-0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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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구한 역사의 꽃, 석조 문화재를 찾아서3
컬툰스토리 | 주식회사 태믹스 | 2014-06-0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유구한 역사의 꽃, 석조 문화재를 찾아 떠나는 기행으로 다음과 같이 10개의 테마로 구성되었습니다. 1)영월의 요선정, 2)밀양박씨정려비, 3)제씨 쌍충사적비, 4)최치원 신도비, 5)근화동 당간지주, 6)함양척화비, 7)공효공묘역 장명등, 8)낙산사 공중사리탑, 9)동문동당간지주, 10)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 등에 대한 최신 사진과 더불어 각 테마에 얽힌 재미있고 유익한 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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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럽, 이성의 몰락
조셉 콘래드 | 새로운제안 | 2017-06-0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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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럽, 이성의 몰락
조셉 콘래드 | 새로운제안 | 2017-06-0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세 가지 사건으로 마스터하는 유럽의 근현대사!
당대를 살았던 영국 소설가 조셉 콘래드의 거침없는 육성을 통해 유럽의 근현대사를 독파하는 책이다.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폴란드 분할통치와 독립만으로도 유럽의 판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과 당시 유행하던 책들을 곁들이면, 유럽 국가 간의 속내와 각 민족의 정서도 생생히 느껴진다.
주류 역사책에 나타나는 조심스러움이나 우회적인 표현보다는, 양심 있는 지식인의 비판적 사고가 잘 드러나 있다. 추한 진실도 숨김 없이 낱낱이 드러내는 저자의 독설을 통해 날 것 그대로의 진실을 느낄 수 있다.
되풀이되는 역사, 유럽 근현대사에서 한국의 현재를 읽다!
유럽이 200년 넘게 지탱해온 사상은 계몽주의였다. 계몽주의 시대 유럽인은 빛, 이성, 도덕, 과학적 합리주의 등 인간의 선한 양심과 발전을 믿었다. 그런 계몽주의 시대의 환상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부터 깨지기 시작하더니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완전히 무너졌다. 20세기 유럽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도덕마저 실종된 시대를 맞이한다.
이성과 도덕의 실종은 폴란드 분할통치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당시 폴란드는 현재 한국과 많은 면에서 닮았다. 사드 배치와 북한 문제를 놓고 미국, 중국, 일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은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3국에 의해 분할통치된 폴란드와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게다가 타이타닉호 침몰(1912) 사건은 세월호 사건의 완벽한 리허설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침몰한 타익타닉호는 유럽의 정신, 제도 모든 것이 총체적 난국임을 보여주었다. 침몰한 세월호 역시 상업주의와 국가제도를 맹신했던 우리의 사고체계를 뒤바꿔 놓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문단의 트렌드를 통해 시대의 변화상을 읽는 즐거움!
이 책은 전쟁 이야기와 사건사고뿐만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책들과 문단의 트렌드 또한 소개하고 있다. 이성이 무너진 시대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영매’와 ‘심령론’, 겉표지만 보고 책의 내용을 판단하는 풍토, 20세기 흉물 연극 검열관, 독재국가 러시아의 아까운 재능 ‘투르게네프’ 등등 다른 책에서 보기 드문 당시의 문학 트렌드를 엿볼 수 있다. 유럽의 근현대사를 어떤 역사적인 서술보다 더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유럽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현재의 유럽을 이해하려면 최소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가야 한다
최근 프랑스에 39세 최연소 대통령이 당선되어 화제다. 왜 프랑스는 ‘강한 유럽연합’을 지지하는 마크롱에 손을 들어주었을까? 브렉시트를 선언한 영국과 프랑스는 앞으로 어떤 관계로 발전할까?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은 이런 프랑스에 어떤 입장일까? 메르켈 총리의 4연임 가능성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장기집권은 어떤 의미로 해석할 수 있나?
현재 유럽의 판도를 이해하려면 최소한 20세기 초부터 시작되는 유럽의 근현대사를 이해해야 한다. 물론 더 오래된 역사부터 이해하면 좋겠지만, 거대한 대륙의 역사를 한눈에 포착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독자들을 위해 《유럽, 이성의 몰락》은 안성맞춤일 것이다.
이 책은 1904년 러일전쟁,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1914년부터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 폴란드의 분할통치와 독립 등 몇몇 굵직한 사건을 영국 소설가 조셉 콘래드의 생생한 증언으로 들려준다. 몇몇 문학작품을 통해 당시 유행하던 문단의 트렌드를 살펴보는 재미도 있다.
이 책을 통해 유럽의 근현대사뿐만 아니라, 현재 유럽의 판도를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폴란드 상호관계와 각 나라의 민족성, 그리고 유럽 각국 사이의 진솔한 감정 등이 동시대 유럽 지성인에 의해 날 것 그대로 표현되었다.
이성의 시대는 끝났고 도덕은 실종됐다!
타이타닉호 침몰은 제1차 세계대전의 예고편이다
이 책은 영국 소설가 조셉 콘래드의 에세이 《삶과 문학에 관한 기록(Notes on Life & Letters)》(1923)을 편역한 판본이다. 1898년부터 1919년까지 발표한 콘래드의 에세이 27편 가운데 총 20편을 가지고 4부, 21개의 장으로 재구성했다.
여기에 실린 모든 글은 ‘이성의 몰락’이라는 주제로 묶을 수 있다. 콘래드가 의도했건 아니건, 모든 글이 계몽시대가 종말에 이르렀고 현대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전혀 다른 소재의 글들의 공통분모를 찾는 것도 이 책을 접하는 흥미로운 포인트가 될 것이다.
계몽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첫 신호탄은 1904년 러일전쟁이었다. 러일전쟁은 ‘한국 땅에 러시아의 밀을 심을 것인가, 일본의 쌀을 심을 것인가, 동해의 지휘권은 누구인가?’를 두고 벌인 전쟁이었다. ‘경제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전쟁이라는 점에서 구시대의 전쟁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어제의 빈둥거리던 귀족들은 그저 심심풀이로 혹은 명예를 위해 싸웠다면, 내일의 도덕적이고 부지런한 민주국가는 빵을 얻기 위해 싸워야 할 것”이라고 콘래드는 새로운 시대의 전쟁 패러다임을 예견한다.
1912년 발생한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은 2년 후 발생할 제1차 세계대전의 예고편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세계 최대 규모의 증기선, 초호화 유람선을 자랑하던 타이타닉호는 구시대적인 유럽의 정신과 제도를 낱낱이 드러내는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타이타닉호 침몰은 진보와 과학기술, 물질문명, 거대기업을 맹신하던 유럽의 사상적 한계를 여실히 증명한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3국에 120년간 분할통치되다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독립한 폴란드를 통해서도 당시 유럽의 한계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폴란드는 열강들에 의해 인정사정 없이 주권을 침탈당하며 나라가 세 동강 난다. 그런 상태에서 분할통치의 당사자들이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폴란드는 의도치 않게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실낱같던 독립의 희망 또한 완전히 사라진다. 폴란드의 이런 역사를 통해 ‘이제 유럽은 없고 단지 무장한 채 거래하는 대륙만 있을 뿐’인 현실을 더욱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다.
혼란한 세상을 틈타 사람들을 속인 ‘새로운 과학’ 등
혹세무민의 시대를 책으로 읽다
이 책에는 콘래드의 문학비평도 11개 챕터에 걸쳐 소개되고 있다. 여기에는 〈연극 검열관〉 챕터를 포함한 문화비평도 일부 들어있다. 스탕달, 모파상, 아나톨 프랑스 등 국내 독자에게 잘 알려진 작가도 있지만, 대부분은 처음 소개되는 작가들이다. 이 작가들의 작품 자체도 흥미롭지만, 당시 시대상과 연결해서 읽으면 더욱 재미가 있을 것이다.
〈책과 사람〉 챕터에서는 생명이 있는 책이 단명하고 오히려 영혼 없는 책은 죽지 않고 살아남는 기이한 현상을 재미있게 풀고 있다. ‘연극 검열관’에 대한 콘래드의 시각은 ‘이성이 몰락한’ 당시 유럽의 분위기를 더욱 쉽게 느끼게 한다. 〈헨리 제임스〉 챕터에서는 내용보다는 화려한 표지 디자인으로 대중에게 어필하는 출판계의 유행이 언급되고 있다. 〈찰스 러프만〉에서는 낙천주의자 찰스 러프만이 일부 독자들에게 미움받는 이유를 설명한다. 전쟁의 시대, 비관적이고 우울한 시대상을 느껴볼 수 있다.
〈심령론〉 챕터에서 저자는 심령론과 심리학 등 새로운 과학의 출현을 한심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과학적 합리주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글이다. 과학은 물론이고 다른 어떤 지식도 없이 시를 쓰는 행태를 꼬집는 챕터(〈조지 본〉)는 이 시대에도 크게 공감이 간다.
이외에도 모든 글에 시대상이 정확히 반영되고 있다. 앞서 말한 사건과 문학을 연결하고 시대적 분위기를 떠올리면서 읽을 때 모든 글에서 나름대로의 도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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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딸, 총을 들다
정운현 | 인문서원 | 2016-12-2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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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딸, 총을 들다
정운현 | 인문서원 | 2016-12-2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치마를 두른 독립운동가들,
여성의 이름으로 조국을 찾겠노라!
물론, 여성도 독립운동을 했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여성 독립운동가, 하면 태극기 들고 만세 부르다 옥중에서 숨진 유관순 열사 이외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는가? 매국노, 하면 이완용밖에 모르듯이, 수많은 여성들이 남성 못지않게 헌신적으로 평생을 바쳐 투쟁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그들을 잊어버리고 있다. 『조선의 딸, 총을 들다』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독립유공자 대열에서도 푸대접을 받고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 24인의 삶과 행적을 복원한 책이다. 대갓집 마님에서 최고의 신식교육을 받은 엘리트 신여성까지, 오로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조국을 찾겠노라 치열하게 싸웠던 여성 독립운동가 24인의 아름답고 용감한 삶, 용감해서 더욱 아름다운 삶을 들려준다.
어머니의 만세,
그리고 딸들의 만만세
김락, 이화림, 남자현, 정정화, 동풍신, 김마리아, 박자혜, 박차정, 조마리아, 안경신, 권기옥, 부춘화, 김향화, 강주룡, 윤희순, 이병희, 조신성, 김알렉산드라, 오광심, 김명시, 정칠성, 방순희, 이희경, 주세죽.
우리는 안중근, 김구, 신채호, 윤봉길, 이봉창의 이름은 알지만 이들의 이름은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보자.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신채호 선생의 아내 박자혜,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도운 백범 김구의 비서 이화림.
하지만 그들은 어머니나 아내이기 이전에 이미 ‘치마를 두른’ 독립운동가였다. 그들은 만주 벌판에서 장총을 들고 직접 일제와 온몸으로 부딪쳤고, 총독을 암살하겠다고 권총을 들고 나섰고, 일제 식민지배의 심장부를 향해 폭탄을 던지고, 비행기를 몰고 가서 일본 왕궁을 직접 폭격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비행사가 되었다. 그뿐인가. 이역만리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피땀 흘려 벌어들인 일당을 기꺼이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고, 아버지의 시신을 곁에 두고 벌떡 일어나 목이 터져라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독립운동 자금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한밤의 국경을 넘나들고, 국채를 갚기 위해 갖고 있는 소소한 패물들까지 기꺼이 내놓았다. 탄약을 만들어 제공하고 독립운동가들의 밥을 지어주고 빨래를 해주고 살림을 챙겼다. 일경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기나긴 옥살이를 하면서도, 심지어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는 순간까지도, 그들의 정신을 지배했던 오직 한 가지 생각은 ‘대한 독립’이었다.
꽃 대신 총을 든 여성,
그들을 기억하라
무엇이 ‘꽃’에 비유되곤 하는 가냘픈 여성들로 하여금 이토록 치열하게, 이토록 당차게 한길로 달려나가게 했을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꽃’ 대신 ‘총’을 들게 했을까? 『조선의 딸, 총을 들다』를 읽다보면 ‘못난 시대’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음을 알게 된다. 엄혹한 시대가 오히려 여성들이 떨쳐 일어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구한말의 양반가 며느리들은 ‘충효사상’에 입각하여, 근대의 엘리트 신여성들은 ‘인간해방’을 꿈꾸며 그렇게 ‘인간의 길’을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들의 숨은 희생이 있어 우리는 가슴 벅찬 광복의 역사를 갖게 되었다. 100여 년 전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다 스러진 불꽃같은 청춘들, 용감해서 더욱 아름다운 여성들이 그곳에 있었다. 『조선의 딸, 총을 들다』는 ‘독립운동=남자’라는 무의식의 편견을 시원하게 부서뜨리면서, 치열해서 더욱 빛나는 어제의 청춘들 이야기를 21세기 오늘의 청춘들에게 오롯이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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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성씨 이야기
차상찬 | 온이퍼브 | 2015-08-1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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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성씨 이야기
차상찬 | 온이퍼브 | 2015-08-1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조선의 성씨 이야기》는 언론인이며 사학자였던 선생의 유고를 모아서 출판한 《조선사외사(朝鮮史外史)》의 ‘제도와 풍속’편(명성사 刊)을 옮긴 것이다. 동 시리즈로 제2권 역대 인물열전, 제3권 명승·고적·명물과 역사상 유서 있는 화(花)·조(鳥)·수(獸), 제4권 잡편(雜篇)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전하는 것은 1권 본책 뿐이다.
여러 가지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에 관련한 그의 저서를 통해 새롭게 역사 이외의 감추어진 진실을 추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이 책은 전자책 각각 7권으로 출간되었다.
‘조선의 성씨 이야기, 조선의 과거제도 이야기, 조선의 징병제도 이야기, 조선의 보부상 이야기, 조선의 봉화 이야기, 조선의 백정(白丁) 이야기, 조선의 명절과 놀이문화’이다.
〈서평〉
-본문 중에서
성(姓)은 곧 대강 모든 것의 주요 머리가 되는 곳이며 씨(氏)는 뒤에 오는 다음 차례를 구별하는 것이다.
조선에도 옛날 단군시대부터 고유한 성씨제도가 있어서 단군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환인씨(桓因氏), 환웅씨(桓雄氏)라 하고 그 자손 해씨(解氏) 또는 부루씨(扶婁氏)라 하며 13대 미추왕의 6대조 알지(閼智)는 성을 김(金)이라 하고 가락국 시조 수로왕도 역시 김(金)이라 하였다.
본관이란 것은 그냥 얼른 생각하면 우스운 것 같지만 실은 남자 핏줄 혈족의 시조발상지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성 제도에 있어서 절대 필요한 것이다.
‘증보문헌비고’에 조선의 성은 496종이라 했는데~
최, 이, 정, 손, 설, 배 여섯 성은 대표 신라의 6성(六姓)이라 하고, 또한 본관이 똑같은 경주이기 때문에 경주 6성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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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죽음을 택한 조선의 선비들
정구선 | 애플북스 | 2016-05-0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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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죽음을 택한 조선의 선비들
정구선 | 애플북스 | 2016-05-0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죽음을 택한 조선의 선비들』에서는 자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목숨과 바꾸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조선시대에는 마음가짐에 따라 자살을 세 가지 등급으로 나누었다. 가장 높은 등급은 인(仁)을 이루고 의(義)를 취하기 위해 자살하는 것, 그다음 등급은 비분강개하여 자기 몸을 희생하는 것, 마지막 등급은 형세가 반드시 환난을 면할 수 없음을 알고 자결하는 것이다. 저자 정구선은 역사에서 배제되었거나 잘 드러내지 않았던 자살을 통해 조선시대의 정치적·역사적 사건의 이면과 사회적인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고 있다.
* 이 도서는 2010년 출간된 〈조선의 메멘토모리〉의 개정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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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국, 일본 그리고 미국
존 듀이 | 페이퍼문(PAPER MOON) | 2016-02-1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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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국, 일본 그리고 미국
존 듀이 | 페이퍼문(PAPER MOON) | 2016-02-1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존 듀이의 철학서를 영어로!
존 듀이는 실용주의 철학에 있어 주요한 인물 중 하나였고 기능심리학의 창시자들 중 하나로 여겨진다. 잘 알려진 사회 참여 지식인이었던 그는 또한 진보주의 교육과 진보주의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었다. 비록 듀이는 그의 교육에 대한 저서로 가장 유명하지만, 그는 인식론, 형이상학, 미학, 예술, 논리, 사회이론, 윤리를 포함하는 많은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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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지도로 먹는 세계사 이야기
후쿠다 토모히로 | 팬덤북스 | 2016-04-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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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지도로 먹는 세계사 이야기
후쿠다 토모히로 | 팬덤북스 | 2016-04-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지리, 지명, 지도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라!
세계사를 한눈에 이해하게 만든
새로운 스타일의 역사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생을 마친 도시, ‘블루스와 로큰롤의 성지’ 멤피스.
멤피스는 원래 이집트의 고대 도시였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자라고 생을 마친 도시는 미국 테네시 주의 멤피스이다. 지금도 그가 살았던 대저택 그레이스랜드와 로큰롤 박물관 등은 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블루스의 성지’라고 불리는 이 도시의 거리를 걷다 보면 사방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왜 ‘블루스와 록의 발상지’라고 불리는지 느낌이 온다.
원래 멤피스라는 지명은 다른 도시의 명칭이었다. 초창기 이곳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서 고대의 유명한 도시 이름을 붙여 번영을 기원했다고 한다. 그 고대 도시가 바로 이집트 왕조의 수도인 멤피스이다.
나일 강 삼각주의 정점에 위치한 멤피스는 강을 건너는 범선을 통해 많은 물자가 모이는 곳이었다. ‘이집트’라는 이름은 멤피스의 옛날 이름이 변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록과 블루스가 없었던 이집트의 도시 멤피스는 기원전부터 지금 미국 ‘블루스의 성지’보다 훨씬 더 번영했던 도시였다.”
- 〈미국에 있는 ‘블루스의 성지’는 이집트가 기원이 된 지명이라고?〉 중에서 발췌
지리, 지명, 지도로 읽는 세계사 이야기
‘세계사’와 ‘지리’를 함께 풀어 보는 역사책
인도라는 이름을 붙여 준 사람은 누구일까? 왜 독일 주변에는 ‘~부르크’라는 지명이 많을까? 중동, 근동, 극동의 기준이 되는 곳은 어디일까?
세계사를 공부하거나 세계 지도를 보다 보면 가끔 생기는 의문들이 있다. 이 책은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세계사를 익히게 한다. 지리, 지명, 지도에 얽힌 수수께끼는 무엇보다 관련 역사를 알아야만 쉽게 풀린다.
앞서 말한 ‘블루스의 성지’ 멤피스의 유래를 이야기하면서 ‘4대 문명의 발생’을, 인도라는 이름을 붙여 준 사람을 알려 주면서 ‘헬레니즘 문화’를, 독일 주변에 ‘~부르크’가 많은 이유를 밝히면서 ‘프랑크 왕국의 분열’을 설명한다. 중동, 근동, 극동의 기준이 어디인지 이야기하면서 ‘영국의 산업 혁명’을 설명하는 식이다. 세계사를 공부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39가지 중요 사건을 재미있게 설명하기 위해 관련된 지리, 지명, 지도의 수수께끼를 던지는 것이다.
지리, 지명, 지도에 얽힌 수수께끼를 푸는 만큼 지도는 필수이다. 39개의 세계사적 사건을 설명하는 곳에는 모두 친절한 지도와 도표가 들어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지도에는 사건과 관련된 지명은 물론이고, 필요에 따라 이동 경로, 지배 영역의 변화, 해당 년도 등이 표시되어 그 가치를 더한다.
《지도로 먹는 세계사 이야기》는 문명의 탄생에서 제2차 세계 대전까지, 대략적인 세계사의 흐름을 지리, 지명, 지도의 비밀을 풀면서 설명한 새로운 유형의 역사서이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시간 여행과 세계 여행을 동시에 누릴 것이다. 세계 역사와 지리의 비밀을 찾는 여행을 떠나 보기를 적극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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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친절한 세계사
미야자키 마사카츠 | 제3의공간 | 2017-05-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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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친절한 세계사
미야자키 마사카츠 | 제3의공간 | 2017-05-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역사분야 베스트셀러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의 저자,
미야자키 마사카츠의 역사 총합본.
“역사는 가장 훌륭한 스승입니다.”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세계사 주요사건과 한눈에 들어오는 지리정보.
세계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 빠른 시간 내에 세계사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역사상 중요한 전환점과 핵심을 짚어준다.
베스트셀러를 포함해 다수의 역사서를 집필한 저자는 대학교수에서 물러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역사를 강의하면서 세계사를 조금 더 쉽게 알리는 방법을 계속 고민해왔다. 여러 가지 강의 기법을 도입하면서 시행착오도 거듭했다. 이 책은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의 역사서와는 달리 영화 한 편을 빨리 돌려 보는듯한 느낌으로 역사를 쭉쭉 읽어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썼다고 한다.
세계사는 늘 새로운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한편의 대하드라마와 같다. 1편에는 메소포타미아의 하천 문명이 그 주인공이었다면 2편에서는 그리스, 로마 제국에서 유라시아, 몽골제국에 이르는 제국의 시대가 열린다. 이때의 주인공들은 말을 타는 기마민족들이다. 그러다가 대항해의 시대가 열리면서 네덜란드와 영국 같은 소국들이 뛰어난 항해기술을 기반으로 세계 곳곳으로 영토를 넓혀나간다. 대서양과 신대륙의 발견까지 이어지면서 자본주의의 토대가 놓이고 바다의 세계사가 육지의 세계사를 삼켜버린다. 이런 세계 규모의 시대는 필연적으로 민족주의의 각성으로 이어지면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고, 구세력이 몰락하는 가운데 신흥국가인 미국이 패권을 차지하게 된다. 미국의 주도하에 글로벌화가 진행된 20세기가 끝나고 21세기로 넘어온 지금, 앞으로도 이런 구도가 계속될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의 지도를 보면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터키), 청 제국(중국), 그리고 무굴 제국(인도)이 유라시아 재역의 대부분을 지배했고, 대서양 주변 지역에서는 유럽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경제와 국민국가체제로 구성된 ‘큰 세계’가 대두했다. 당시 미국은 갓 독립한 나라였고, 호주와 캐나다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그러나 200년이 흐른 지금, 유라시아 제국은 붕괴되어 과거의 모습을 찾기 어렵고 근대를 견인해 온 유럽도 혼란에 빠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세계의 중심이었던 대서양이 태평양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 대하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는 역사의 ‘맥’을 잘 짚는 것이다. 저자는 35개의 ‘키포인트’를 제시함으로써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이나 현상을 요소 요소에 배치했다. 또한 세계사의 큰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지도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책의 설명을 뒷받침하는 지도들이 중간에 삽입되어 있어 이해를 돕고 있다.
세계사가 너무 방대해서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거나, 빠른 시간에 세계사의 주요 포인트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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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하늘을 나는 푸른 자전거
실라 컨웨이 | 위즈덤커넥트 | 2015-08-0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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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하늘을 나는 푸른 자전거
실라 컨웨이 | 위즈덤커넥트 | 2015-08-0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자녀 세대인 대학생들이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 혹은 조부모와 대화를 나누며 부모 세대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기록했다. 한국외대 영어학부에서 강의를 하던 교수 실라 컨웨이의 제안에 따라 학생들이 부모님의 인생 이야기를 녹음해 오는 과제를 수행했던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들 부모 세대의 이야기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구술사이자 생활사이기도 하다. 엮은이는 이들 열네 개의 이야기에서 한국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삶, 박정희 독재 정권,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이 부모 세대의 마음 속에 남긴 상흔 등의 주제를 발견한다.
특히 실라 컨웨이는 학생들에게 부모의 손을 만져보고 관찰하라는 과제를 내주기도 했다. 그 가운데 오정우 씨가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관찰한 손과 아버지의 삶에 관해 쓴 글은 이후 LA타임즈에 소개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각 글마다 자녀 세대가 평소에는 들을 수 없었던 부모 세대의 역사를 듣고 이해하며, 두 세대가 서로 화해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책 말미엔 한국과 같이 식민지 경험을 갖고 있는 아일랜드 출신인 엮은이의 인생 이야기도 실려있어 한국의 경우와 비교해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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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학교는 더 이상 전쟁터가 아니다
정재학 | 유페이퍼 | 2015-08-0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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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학교는 더 이상 전쟁터가 아니다
정재학 | 유페이퍼 | 2015-08-0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2006년도에 종이책으로 나온 것을 전자책으로 다시 발간하게 되었다. 저자 정재학은 이책과 더불어 전교조 비판서를 여러권 발간한다.
현직 교사가 쓴 전교조의 실상을 파헤친 전교조를 고발하는 책. 교육현장이 더이상 전쟁터가 되지 않아야한다는 사명감으로 저자는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전교조가 과연 교육을 위한 단체인지, 전교조 반미운동은 교육운동인지 좌익운동인지, 전교조를 없애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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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 눈에 들어오는 역사상식 - 살아있는 세계사 1 (고대편)
그림책편집부 | 도서출판 그림책 | 2014-03-2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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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 눈에 들어오는 역사상식 - 살아있는 세계사 1 (고대편)
그림책편집부 | 도서출판 그림책 | 2014-03-2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유명한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에 대해 말하기를,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다시 그는 역사에 대해 말하기를,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며,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고, 또한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라고 했다. 즉, 그는 역사란 현재의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본 것이다.
흔히 역사는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나아간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현재와 비슷한 모습을 과거에서 찾을 수 있고, 이를 교훈 삼아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의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어떻게 바꿔갈 것인지, 어떻게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열쇠를 갖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가 접근하기 쉬운 친구가 아니다. 세계사라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은 세계 역사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서는 아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역사 이야기들을 단위별 주제를 중심으로 엮어 누구나 가까이할 수 있도록 한 가벼운 입문서이다. 이 책을 즐겁게 읽어 딱딱한 역사와 조금이라도 친근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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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 눈에 들어오는 역사상식 - 살아있는 세계사 2 (중세시대)
그림책편집부 | 도서출판 그림책 | 2014-03-2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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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 눈에 들어오는 역사상식 - 살아있는 세계사 2 (중세시대)
그림책편집부 | 도서출판 그림책 | 2014-03-2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유명한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에 대해 말하기를,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다시 그는 역사에 대해 말하기를,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며,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고, 또한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라고 했다. 즉, 그는 역사란 현재의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본 것이다.
흔히 역사는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나아간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현재와 비슷한 모습을 과거에서 찾을 수 있고, 이를 교훈 삼아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의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어떻게 바꿔갈 것인지, 어떻게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열쇠를 갖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가 접근하기 쉬운 친구가 아니다. 세계사라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은 세계 역사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서는 아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역사 이야기들을 단위별 주제를 중심으로 엮어 누구나 가까이할 수 있도록 한 가벼운 입문서이다. 이 책을 즐겁게 읽어 딱딱한 역사와 조금이라도 친근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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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 눈에 들어오는 역사상식 - 살아있는 세계사 3 (근세편)
그림책편집부 | 도서출판 그림책 | 2014-03-2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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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 눈에 들어오는 역사상식 - 살아있는 세계사 3 (근세편)
그림책편집부 | 도서출판 그림책 | 2014-03-2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유명한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에 대해 말하기를,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다시 그는 역사에 대해 말하기를,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며,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고, 또한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라고 했다. 즉, 그는 역사란 현재의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본 것이다.
흔히 역사는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나아간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현재와 비슷한 모습을 과거에서 찾을 수 있고, 이를 교훈 삼아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의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어떻게 바꿔갈 것인지, 어떻게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열쇠를 갖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가 접근하기 쉬운 친구가 아니다. 세계사라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은 세계 역사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서는 아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역사 이야기들을 단위별 주제를 중심으로 엮어 누구나 가까이할 수 있도록 한 가벼운 입문서이다. 이 책을 즐겁게 읽어 딱딱한 역사와 조금이라도 친근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
101 |
[역사] 한 눈에 들어오는 역사상식 - 살아있는 세계사 4 (근대편)
그림책편집부 | 도서출판 그림책 | 2014-03-2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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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 눈에 들어오는 역사상식 - 살아있는 세계사 4 (근대편)
그림책편집부 | 도서출판 그림책 | 2014-03-2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유명한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에 대해 말하기를,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다시 그는 역사에 대해 말하기를,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며,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고, 또한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라고 했다. 즉, 그는 역사란 현재의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본 것이다.
흔히 역사는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나아간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현재와 비슷한 모습을 과거에서 찾을 수 있고, 이를 교훈 삼아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의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어떻게 바꿔갈 것인지, 어떻게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열쇠를 갖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가 접근하기 쉬운 친구가 아니다. 세계사라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은 세계 역사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서는 아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역사 이야기들을 단위별 주제를 중심으로 엮어 누구나 가까이할 수 있도록 한 가벼운 입문서이다. 이 책을 즐겁게 읽어 딱딱한 역사와 조금이라도 친근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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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 눈에 들어오는 역사상식 - 살아있는 세계사 5 (현대편)
그림책편집부 | 도서출판 그림책 | 2014-03-2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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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 눈에 들어오는 역사상식 - 살아있는 세계사 5 (현대편)
그림책편집부 | 도서출판 그림책 | 2014-03-2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1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유명한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에 대해 말하기를,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다시 그는 역사에 대해 말하기를,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며,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고, 또한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라고 했다. 즉, 그는 역사란 현재의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본 것이다.
흔히 역사는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나아간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현재와 비슷한 모습을 과거에서 찾을 수 있고, 이를 교훈 삼아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의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어떻게 바꿔갈 것인지, 어떻게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열쇠를 갖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가 접근하기 쉬운 친구가 아니다. 세계사라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은 세계 역사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서는 아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역사 이야기들을 단위별 주제를 중심으로 엮어 누구나 가까이할 수 있도록 한 가벼운 입문서이다. 이 책을 즐겁게 읽어 딱딱한 역사와 조금이라도 친근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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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강남의 탄생
한종수, 강희용 | 미지북스 | 2016-05-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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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강남의 탄생
한종수, 강희용 | 미지북스 | 2016-05-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6-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현대사를 증언하는 강남 개발의 역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형제 중 공부 잘하는 아들이 있으면 온 집안이 그를 위해 희생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지역으로 치면 아마 강남이 그런 ‘잘난 아들’에 해당할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명문 학교와 국가기관이 옮겨 갔고 각종 특혜가 퍼부어졌기에 지금의 강남이 존재할 수 있었다. 강남에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했던 꿈틀대는 힘과 욕망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 책은 새로운 화해의 시대를 예감하며 여유로운 시선으로, 질시와 지탄의 강박을 벗고서 숨 가쁘게 달려 온 강남 개발의 역사를 돌아본다. 강남은 한국 현대사의 얼굴이다. 강남을 안다는 것은 한국 현대사를 안다는 것과 같다.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서울, 어디를 개발할 것인가?
1960년대에 서울은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포화 상태였다. 인구 급증은 주택난 등 각종 도시 문제를 낳았는데, 특히 수도 방위 차원에서 심각한 안보 문제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휴전선에서 불과 40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강북에 지나치게 많은 인구와 중요 시설이 집중되는 형세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은 서울의 도심 기능을 분산시켜 안보상의 부담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그렇다면 어디를 개발할 것인가? 만약 우리나라가 분단국가가 아니었다면 국토의 전통적인 중심축인 서울-개성-평양 축에 있는 은평, 고양, 파주 쪽이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훨씬 먼저 개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한강을 건너지 못한 1백만 명가량의 시민이 공산 치하에 남겨져 고초를 당한 기억이 아직 생생하던 때였고 1960년대 후반은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 등이 연이어 터지던 시기였다. 결국 박정희 정권은 한강 남쪽, 강남으로 눈을 돌렸다.
아직 ‘강남’이란 말조차 없던 시절
1963년 이전까지 오늘날 우리가 ‘강남’이라 부르는 곳은 경기도 광주군과 시흥군에 속한, 논밭이 대부분이고 달구지나 지나다니는 소로(小路)들로 마을과 마을이 이어진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다. 지금은 이곳을 ‘강남’이라 부르지만 예전에는 ‘영등포 동쪽’ 또는 ‘영등포와 성동(城東) 중간’이라는 뜻의 ‘영동(永東)’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실제로 1970년대에 시작된 개발 계획의 정식 명칭도 ‘강남 개발’이 아닌 ‘영동 개발’이었다. 다시 말해 ‘강북’이 곧 서울이었고, 한강 이남의 사람들은 강 건너를 ‘서울’이라고 불렀다.
커지는 강남 개발 규모
1963년 1월 1일 서울시 행정구역이 변경되면서 드디어 오늘날 강남에 해당하는 지역들이 대거 서울에 편입되었다. 1966년 9월 서울시는 반포에서 삼성동에 이르는 800만 평을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로 지정해 달라고 건설부에 요청해 승인을 받았다. 이로써 강남 개발이 시작되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강남 개발을 밀어붙일 힘과 속도가 제대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1968년 2월 1일 경부고속도로 기공식이 열린 다음 날, 영동구획정리지구 시행 공고가 났다. 맨 처음 영동구획정리지구는 313만 평 규모였다. 하지만 정부가 지시한 고속도로용 부지 9만 평과 공공용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구획정리지구는 520만 평으로 늘어났고 1970년 후반에는 무려 937만 평에 이르게 되었다. 사대문 안 면적이 500만 평에 불과함을 떠올리면 강남의 면적이 얼마나 넓은지 실감할 수 있다. 이렇게 되자 서울시는 적당한 면적 단위로 점진적으로 개발한다는 당초 계획을 바꿔 이 엄청난 공간을 시가지화할 필요가 생겼다. 정부와 서울시는 강남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많은 정책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 그리고 불과 10여 년 만에 강남은 완벽하게 현대 도시로 탈바꿈한다.
강남과 강북을 이어준 제3한강교
강남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땅이었고 그것만으로도 개발 잠재력이 엄청났다. 하지만 한강이 큰 장벽이었다. 오늘날에야 한강 다리가 흔하지만 이 당시만 해도 한강에 다리를 놓는 일은 국가적 대역사였다. 1917년 건설된 최초의 한강 다리인 제1한강교(한강대교) 이후 두 번째 다리인 제2한강교(양화대교)가 건설되기까지는 거의 반세기가 걸렸다. 그렇지만 한강에 다리를 놓을 수만 있다면 강남은 기존 도심에서 지척이었다. 1969년 12월 25일 마침내 제3한강교가 준공되었다. 이 다리는 한강을 넘어 진정한 의미에서 ‘강북’과 ‘강남’을 이어준 첫 번째 다리였다. 훗날 ‘말죽거리 신화’로 불리는 땅값 폭등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그보다 먼저 착공한 경부고속도로와도 이어져 그 출발점이 되었다. 이후 제3한강교는 ‘강북’으로부터 ‘강남’이라는 지역을 잉태하는 탯줄이 되었다.
거대한 개발 부지로 재탄생하다
강남의 또 다른 약점은 지대가 낮아서 자주 물에 잠긴다는 것이었다. “남편이나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할 정도로 강남은 대대적인 수방(水防) 대책 없이는 도시로서 기능할 수 없는 땅이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를 겪고 나서 일제가 쌓은 제방이 있었지만 그것은 원효로와 영등포, 노량진 일대만 겨우 지킬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마포, 뚝섬, 광진, 강남, 여의도, 잠실 일대는 홍수가 나면 모두 물에 잠겼다. 한강을 서울의 중심 생활권으로 만들기 위한 한강 개발이 1967년부터 시작되었다. 강변1로를 제방도로 형태로 건설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제방도 제방이지만 한강의 수량과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거대한 댐이 필요했는데 마침 소양강댐이 1973년에 완공되었다. 이러한 수방 사업을 거쳐 서울 시민들은 홍수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가장 큰 혜택을 본 지역은 물론 강남이었다. 이어서 ‘공유수면’ 매립을 통한 택지 조성이 뒤따랐고 강남은 진정한 의미에서 거대한 개발 부지로 거듭났다. 동시에 강남에는 폭 40~90미터의 광로(廣路)와 대로 등 무려 37개의 간선도로가 격자형으로 깔렸다. 이런 식의 도로망은 한국에서는 처음이었는데, 특히 제대로 된 건물과 시설들이 들어서기도 전, 허허벌판에 시원스레 뚫린 도로는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도대체 이렇게 넓은 도로가 왜 필요한 걸까?”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강남의 도로들은 자동차들로 가득 찼고 휑하던 거대 블록마다에는 근사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며 고층 빌딩들이 들어섰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인물과 기업들이 이야기를 남겼고 랜드마크가 될 건물들이 속속 등장했다.
아파트 지구가 만들어지다
수방 사업과 공유수면 매립을 마쳤지만 한강변에서 좀 안쪽의 반포, 서초동 일대는 여전히 강변도로보다 지대가 낮았다. 원칙대로라면 제대로 매립을 해서 지대를 높여야 했지만 서울시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심한 홍수가 나거나 벼락이 쳐서 배수펌프장에 전기 공급이 중단되면 저지대는 꼼짝없이 물이 찰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시 서울시장 양택식은 저지대 지역은 모두 3층 이상으로 집을 짓게 하는 고육지책을 내놓았다. 최악의 경우 주민들이 3층 이상으로 대피하면 인명 피해는 없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이리 하여 침수되는 지역까지 전부 아우르는 엄청난 규모의 ‘아파트 지구’가 강남에서 공식 탄생하게 된다.
한편 순조로운 개발을 위해선 아주 많은 주민들이 필요했다. 초기에 강남 최초의 아파트 단지인 논현동 공무원아파트가 지어졌고 영동 주택단지가 조성되어 성공리에 분양을 마쳤지만 이것들은 규모가 너무 작았다. 그 정도로는 강남의 넓은 공간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마침내 1976년 8월 공식적으로 ‘아파트 지구’가 고시된다. 반포 지구 167만 평, 압구정 지구 36만 평, 청담 지구 11만 평, 도곡 지구 22만 평, 잠실 지구 74만 5천 평 등 강남에 설정된 아파트 지구는 다른 지역과 비교를 불허하는 단연 압도적인 규모였다. 이곳에 오늘날 강남을 대표하는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사대문 안 구도심과 영등포를 따라잡다
원래 정부는 영동 개발을 시작하면서 서울시청을 비롯한 112개 국가기관을 모조리 옮기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많은 국가기관이 강남으로 이전했다. 대법원, 서울고등법원, 검찰청, 국정원, 한국은행 전산본부 등이 강남에 자리 잡았다. 한편, 1974년에 서울시장에 부임한 구자춘은 ‘3핵 도시론’에 미쳐 있었다. ‘3핵 도시론’이란 사대문 안 기존 도심을 첫 번째 핵으로, 여의도와 영등포 산업 지대를 두 번째 핵으로 삼고, 세 번째 핵으로 강남을 건설한다는 도시계획안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지하철 2호선의 노선을 강남을 관통하는 순환선으로 바꿔 버리는 한편, 적극적으로 명문고의 강남 이전을 추진했다. 그에 따라 경기고, 서울고, 숙명여고 등 이른바 강북의 명문고들이 옮겨간 강남구와 서초구는 유명한 ‘강남 8학군’과 ‘강남 교육특구’를 형성하게 되었다. 또 강남은 점점 대형 병원의 메카로 변해갔다. 건설회사들에 이어 백화점 기업들이 굴지의 대기업으로 커가는 곳이 되었으며, 고급 음식점과 카페가 생기고 외국 외식 문화가 도입되며 한국 소비문화를 선도하는 공간이 되어 갔다. 강남에 자리 잡은 대형 교회와 성당 또한 신자들이 급격히 늘어나며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또 강북에서 신설 및 이전이 금지된 유흥업소들이 몰려들어 신사, 압구정, 논현동 일대는 화려한 유흥가로 변해 갔다.
더 커지는 강남: 잠실, 수서, 분당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던 영동 개발은 놀랍게도 10여 년 만에 완료되었다. 하지만 개발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고 강남은 계속 확장되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잠실을 개발했다. 이때 지어진 아시안선수촌아파트와 올림픽선수촌아파트는 아파트 문화를 진일보시켰고 무엇보다 잠실이 강남권에 묶이는 데 있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 외에도 잠실종합운동장을 비롯해 예술의전당과 코엑스 등 오래도록 강남의 간판이 될 랜드마크들이 전두환 정권 시기에 자리를 잡았다. 노태우 정권 시기에 들어서도 강남 개발은 수서와 일원, 분당 등으로 확대되어 갔다.
개발의 그늘: 사라져버린 것들과 어두운 기억들
이 책은 강남 개발 시기를 거치며 사라져버린 옛 기억의 장소들을 차근차근 돌아본다. 수방 사업의 일환이었지만 한강변에 제방을 쌓고 강변도로를 만들면서 사라져버린 옛 한강변의 풍경에 대한 아쉬움이라든지, 1970년대 초 압구정동과 옥수동 사이에 있던 저자도(楮子島)가 아파트 대단지 건설을 위해 골재로 채취되어 사라져버린 이야기, 여의도 개발 당시 저자도와 비슷한 운명을 맞았던 밤섬 이야기, 잠실 물막이 공사의 결과로 잠실섬 아래를 흐르던 송파강이 사라지고 석촌호수로만 남게 된 이야기 등을 빠짐없이 소개한다. 그 외에도 강남 개발 장면마다 수많은 뒷이야기들이 독자들을 기다린다. 정부 유력 인사가 주도한 부동산 투기,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일으킨 수서 사건, 끊어진 성수대교와 무너진 삼풍백화점에 얽힌 사연 등 강남 곳곳에 남겨진, 이제는 역사가 된 에피소드들 또한 강남 개발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기록에 남겼다.
가장 서울다운 서울은 강남이다
조선 시대 이래 서울은 조금씩 영역이 확장되어 왔다. 조선의 수도가 ‘사대문 안’ 한양이었다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명동을 중심으로 한 신시가 형성을 주도했다. 그리고 현대에 강남이 새로이 편입되어 서울을 대표하는 도심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보면 가장 서울다운 서울은 어쩌면 조선 시대의 한양도 아니고, 일본이 만든 경성도 아니며, 강남이다. 하지만 강남의 성공은 우리나라 도시사에 깊은 그늘을 드리웠다. 한때 서울을 강타한 뉴타운 광풍은 강남에 역전당한 강북 사람들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였다. 언젠가부터 부산과 대구 등 광역시는 물론이고 소도시들조차 모두 마치 비법이라도 배운 것처럼 강남 개발 과정을 본 따 신도심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지방 도시들은 구도심이 죽어 버리고 특징이 없는 그저 그런 붕어빵 도시들이 되어 갔다. 최근에 와서는 어떤 개발론자도 63빌딩과 올림픽도로, 잠실 주경기장을 서울의 자랑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 시대가 지나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 책은 강남의 역사를 말하는 데서 조금 더 나아가 강남에 끌려가는 우리 사회를 성찰하며 우리 도시들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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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민족문제연구소 | 생각정원 | 2017-04-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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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민족문제연구소 | 생각정원 | 2017-04-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6-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유족·한일 시민의 목소리를 한 권에 응축한 책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소속 연구원, 유족이자 활동가인 이희자 대표, 일본의 시민운동가, 한국의 변호사까지 18명의 필자가 집필에 참여했다. 길게는 20년, 많게는 30차례에 걸쳐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남아 있는 비극의 역사 현장에 찾아가 취재하고, 피해당사자와 유족, 목격자의 구술?인터뷰를 생생하고 촘촘하게 기록했다. 노동자, 군인?군속, 군 ‘위안부’, 전범, 포로, 원폭피해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드러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를 쫓는 이 여정은 참으로 전방위하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말마따나 “하나의 민족운동사”라 해도 좋을 책이다.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영토 분쟁이 전부가 아니다
가려진 역사의 증인들을 만나다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군함도’라 불리던 하시마와 인근의 다카시마를 직접 취재해 강제동원의 실상을 담았다. ‘군함도’와 강제징용 시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의 역사왜곡 시도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펼쳤던 필사의 노력을 담았다. 2부에서는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 걸쳐 전쟁의 군수품 조달에 동원됐던 조선인 노무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3부에서는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각지에서 군인·군속, 군 ‘위안부’뿐 아니라 전범, 포로 등 미처 알지 못한 다양한 모습으로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됐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4부에서는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에 맞선 피해자와 유족들의 법정투쟁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진상규명, 일본정부의 공식적 책임 인정과 배상 등 여러 가지 남겨진 과업을 제시한다.
얼마 전 외교부가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을 이전하라는 공문을 부산의 지자체에 보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독일에서 한일 양자회담이 열리기 불과 사흘 전의 일이었다. 회담 자리에서도 일본 측에게 공문 발송에 대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일간지는 한국정부가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후 이듬해인 2016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돕는 민간단체들에 대한 보조금을 일제히 중단한 사실을 보도했다. 와중에 일본 고위층의 역사 부정 망언은 연일 뉴스를 장식한다. 이 달만 해도 일본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일본 외무성 심의관이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발언을 해 국내외의 비판을 받았다.
일본은 왜 소녀상을 ‘위안부’상이라고 고쳐 부르려 하고 자꾸 눈앞에서 치우려고 할까. 한국정부는 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만하고 지방정부와 여론을 거스르면서까지 일본 눈치를 살피는 걸까. 한일 정부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공언한 12?28 ‘위안부’ 합의의 진실은 무엇일까.
일제 식민지배 30년, 해방 후 70년…
강제동원 100년의 진실을 밝히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한국강제병합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청산되지 않은 한일 과거사, 일제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유족·한일 시민의 목소리를 한 권에 응축한 책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소속 연구원, 유족이자 활동가인 이희자 대표, 일본의 시민운동가, 한국의 변호사까지 18명의 필자가 집필에 참여했다. 길게는 20년, 많게는 30차례에 걸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남아 있는 비극의 역사 현장에 찾아가 취재하고 피해당사자와 유족, 목격자의 구술?인터뷰를 생생하고 촘촘하게 기록했다. 노동자, 군인?군속, 군 ‘위안부’, 전범, 포로, 원폭피해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드러난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를 쫓는 이 여정은 참으로 전방위하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말마따나 “하나의 민족운동사”라 해도 좋을 책이다.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영토 분쟁이 전부가 아니다
가려진 역사의 증인들을 만나다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군함도’라 불리던 하시마와 인근의 다카시마를 직접 취재해 강제동원의 실상을 담았다. ‘군함도’와 강제징용 시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의 역사왜곡 시도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펼쳤던 필사의 노력을 담았다. 2부에서는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 걸쳐 전쟁의 군수품 조달에 동원됐던 조선인 노무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3부에서는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각지에서 군인·군속, 군 ‘위안부’뿐 아니라 전범, 포로 등 미처 알지 못한 다양한 모습으로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됐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4부에서는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에 맞선 피해자와 유족들의 법정투쟁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진상규명, 일본정부의 공식적 책임 인정과 배상 등 여러 가지 남겨진 과업을 제시한다.
군함도, 조세이 탄광, 하이난 섬, 파푸아뉴기니…
비극의 역사 현장을 찾아가다
나가사키 항에서 약 1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하시마(군함도)는 면적 0.063제곱킬로미터(야구장 두 개 정도 크기)의 작은 섬이다. 미쓰비시는 1916년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인 7층 아파트를 이곳에 세웠다. 좁은 섬에 근대식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는 모습이 마치 군함처럼 보여 그때부터 ‘군함도’라고 불렸다. 마치 신분 계급을 상징하듯 방파제 끄트머리 가장 낮은 곳에 조선인·중국인 노동자의 숙소가, 그 위에 일본이 최초의 아파트라고 자랑하는 광부들의 주택이, 그 위에 관리인 아파트, 가장 높은 곳에 관리소장의 사택, 섬 꼭대기에는 신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고故 서정우 씨는 16세에 하시마 탄광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다가 인근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로 옮겨갔고 그곳에서 원자폭탄 피해를 입었다(책 65쪽에 일본인 하야시 에이다이가 찍은 높이 10미터의 방파제 위에 서 있는 서정우 씨의 사진이 실려 있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섬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시체 수거 작업에 동원되어 피폭되기도 했다. ‘나가사키 재일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모임’은 2만 명의 조선인이 피폭을 당하고, 그중 절반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추정한다.
하시마 바로 옆에 있는 섬 다카시마에는 미쓰비시의 창업자 이와사키 야타로의 거대한 동상과 석탄자료관이 자리하지만, 강제동원에 관한 기록은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한때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가 족히 100개는 넘게 들어 있었다는 납골당과 공양탑이 있다. 지금은 파괴되어 더는 들여다볼 수 없게 되었다. 책에는 원폭피해자 2, 3세와 시민단체 활동가로 꾸려진 평화기행단이 하시마와 다카시마를 직접 찾아가 취재한 내용을 담았다.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일본이 ‘근대화의 상징’ ‘자랑스러운 세계유산’으로 포장하려는 군함도의 처절한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
대만에서 약 1,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하이난 섬에는 ‘조선촌’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1939년 하이난 섬을 점령한 일본은 이곳을 남방 진출의 거점으로 삼았다. 전황이 악화되어가던 1943년 조선총독부는 형무소에 있던 조선인 죄수들까지 동원해 조선보국대라는 이름으로 섬에 보냈다. 일본은 하이난 섬의 토지와 가축, 각종 자원을 수탈하고, 군용시설을 짓기 위해 현지인과 아시아인을 강제노동시키고, 심지어 성노예로 삼고 학살했다. 1945년 당시 도로 건설에 동원되었던 푸아룽 씨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일본군은 아무 이유도 없이 조선인들을 두 사람씩 나무에 매달아 때렸다. 조선인이 조선인을 때리게 하면서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구경했다. 죽으면 다른 조선인에게 구덩이를 파서 묻게 했다.”
그해 8월 15일 패전한 일본군은 1,000여 명의 조선인에게 갱도를 파게하고 무기와 물자를 묻었다. 그리고 그 조선인들을 전부 살해해 한곳에 묻었다. 일본군이 모두 철수한 후 현지 주민들은 조선인이 묻힌 곳을 ‘천인갱’이라 부르고, 애도의 뜻을 담아 마을 이름을 ‘조선촌’으로 바꿔 불렀다.
하이난 섬의 이 같은 전쟁범죄는 기슈 광산을 운영했던 이시하라산업의 만행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재일조선인과 일본 시민활동가, 연구자들이 모여 30차례에 걸쳐 하이난 섬 조선촌을 찾았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과 수차례의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2001년에는 한 달간 발굴 작업을 시도했는데, 땅을 파자마자 100여 구가 넘는 유골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 정부, 그리고 2004년 설치된 강제동원위원회에 차례로, 체계적인 유골 발굴, 관련 문서 공개와 진상규명을 요청했으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2006년 ‘기슈 광산의 진실을 밝히는 모임’은 일본인 고고학자, 발굴 전문가를 동반하고 독자적으로 발굴을 진행했다.
하이난 섬에 강제동원되었다가 가석방되어 귀향한 한국인들을 찾아 새로운 증언을 듣기도 했다. 모두가 열대기후 속 열악한 환경과 일본군의 폭력 속에서 기아, 질병, 가혹한 노동에 쓰러져간 동료들의 이야기를 생생히 전했다. 조선촌은 현재 대규모 개발과 토지 강제수용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조선인이 매장된 땅 절반이 이미 토사로 뒤덮였고 그 위에 도자기 공장이 세워졌다. 현지인은 말한다. “한국정부가 조선인이 묻힌 장소를 어떻게 해줄 수 없는지 그 방법을 찾아보라”고.
노동자, 군인·군속, 군 ‘위안부’, 전범, 원폭피해자, 재일조선인…
증인들의 마지막 목소리를 귀담아듣다
1947년 싱가포르의 창이형무소 교수대에서 죽음을 맞이한 조선 청년 조문상은 개성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식민지 조선의 엘리트였다. 그는 연합군 포로를 학대했다는 이유로 전범이 되었고 교수형을 당했다. 17세 때 위험이 덜 하고 월급을 많이 준다는 말에 속아서 포로감시원이 된 이학래도 전범재판에 올랐다. 그는 포로감시원이 되자마자 욕설과 구타, 마주보고 뺨 때리기 등의 가혹 행위를 훈련 받았다. 전쟁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기대에 젖어 있던 그는 전범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호주정부가 자국의 전쟁포로에게 포로감시원들의 사진을 보이며 용의자를 가려낸 결과였다. 포로들은 실질적인 책임자보다 눈앞에 있는 말단 감시원들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학래는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죽음을 면했다.
이학래처럼 살아남은 조선인 전범들은 일본 스가모형무소로 이송되었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된 뒤에도 이들을 석방하지 않았다. 구금 당시 일본 국민이었기 때문에 남은 형기를 마쳐야 한다는 논리였다. 막상 석방되더라도 가석방 신세라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던 그들 중에는 삶을 비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있었다.
재일한국인 전범자들은 ‘동진회’를 결성해 일본 내각이 바뀔 때마다 청원서를 내고 법적투쟁을 벌여 왔다. 17세 소년 이학래는 아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싸우고 있다. 2004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연합국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포로가 혹독하게 당한 것은 사실이고,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이 형편없었다 해도 연합국에게 불평하지는 않겠다. 정말로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일본정부다. 징용해서 써먹어 놓고 필요가 없어지니 다 쓴 걸레처럼 버리고 모른 척한다. 인간다운 말 한마디라도 왜 건네지 않는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24개국 417만 명의 전쟁포로를 억류하고 소련의 전후복구사업에 강제동원했다. 일본군에 징병되어 만주?사할린?쿠릴열도 등에 배치되었던 조선인들도 60만 명의 일본군 포로에 포함되어 시베리아 각지의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8월에 종전을 맞은 조선인들은 여름 군복 차림으로 시베리아 삭풍을 버텨야 했다. 혹한, 기아, 중노동, 장티푸스·이질 등의 전염병으로 사망자가 속출했지만, 땅이 얼어 바로 묻지 못했다. 소련군은 사망자의 옷을 벗기고 가마니에 말아서 창고에 쌓아두었다가 이듬해 봄 한꺼번에 포로들을 시켜 시체를 매장하게 했다.
전쟁의 막바지에 징집되어 입대 날 바로 소련과의 전쟁이 개시되는 불운을 겪은 이규철의 수기 기록 《시베리아 한의 노래》는 시베리아 억류 피해를 살피는 더없이 소중한 자료이다.
“몸조심하고 꼭 살아 돌아와야 한다고 당부하는 가족들의 말을 가슴에 새겨 떠나는 아들들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누구를 위해 전쟁터로 가야 하나. 일본을 위해서 죽고 싶지 않다. _이규철, 《시베리아 한의 노래》
하바로스크에서 화물선을 타고 귀국한 조선인 포로 중에서 북한을 거쳐 고향 남한으로 내려온 포로들은 기총 사격을 받거나 공작원이나 간첩으로 오해받아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 곧이어 한국전쟁이 터지자, 적성국가 체류 경험이 있다고 하여 최전방에 세워지기도 했다. 그들은 그 전쟁에서 희생되거나, 생존하더라도 내내 감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90년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들이 결성한 ‘시베리아삭풍회’는 일본 전국억류자보상협의회(전억협)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 중앙공문서보관소로부터 노동증명서를 발급받았다. 시베리아삭풍회와 전억협의 공동 투쟁은 한일 피해자 단체가 함께 싸운 보기 드문 사례로, 모두 3차례에 걸쳐 총 55명의 노동증명서를 발급받는 성과를 거뒀다. 시베리아삭풍회는 이후 재한군인군속재판 제2차 소송에 원고로 참여했고, 기각되자 재차 항소했다. 일본 법원의 기각 사유는 일본정부의 말과 다름없었다.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전쟁으로 우리가 왜 싸우는가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2차 세계대전을 끝낸다는 의미로 일본과 연합국 48개국이 맺은 것으로, 1951년 9월 8일 조인되었고 이듬해 4월 28일 발효됐다.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은 참가하지 못함으로써 전시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향유할 수 없게 됐다. ‘한일협정’은 1965년 6월 22일 도쿄에서 ‘한일 양국의 국교관계에 관한 조약(기본조약)’을 조인하고 수교에 이른 일이다. 일본의 침략과 가해 사실에 대한 인정과 사죄가 선행되지 않았고, 청구권, 어업, 문화재반환 등에서 한국 측의 지나친 양보가 있어 논란이 일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한일협정은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을 위한 거의 모든 싸움에서 일본에게는 일종의 알리바이가 되었고, 이는 고스란히 법원 판결의 근거로 이어졌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배상문제는 모두 매듭지었다” “한일청구권협정 및 조치법에 의해 완전히 해결됐다”는 말이 되돌아오곤 한다.
이는 때때로 일본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해석·적용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자 자동적으로 일본 국적을 상실한 조선인 전범들은 석방을 기대했지만, 일본 최고재판소는 구금 당시 일본 국민이었기 때문에 나머지 형기를 마쳐야 한다고 판단했다. 부산 일본군 ‘위안부’?근로정신대 소송은 일본의 지방재판소에서 손해배상을 명하는 판결을 받아냈지만, 일본정부가 미국에 로비하여 “전쟁배상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및 2국 간 조약으로 해결되었다”는 말을 끌어내면서 흐지부지되었다. 한일협정도 사사건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1967년 원폭피해자협회 회원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인 항의 시위에서, 그리고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 후지코시 등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일본은 피해자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한일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답했다.
2015년 12월 28일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본의 외교적 압승”이라고 평한다. 피해 당사자와 대다수 국민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1965년 한일협정을, 보상의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크게 반발했던 1995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연상시킨다. 지금 일본은 주한일본대사를 귀국시킨 후 한국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면서, 12?28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정치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10억 엔의 보상금을 보냈다는 말과 “군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말과 함께. 일본은 이제 뒤로 물러나 우리끼리의 싸움을 관전하고 있는 것만 같다. 외교부가 지자체에 소녀상을 이전하라는 공문을 발송한 것에 이어 노총이 추진해온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상’의 건립도 외교부와 국토교통부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왜 일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우리가, 우리끼리 싸워야 하는가. 그토록 성급히 두 손을 부여잡고 ‘불가역’을 선언할 이유가 뭐였을까. 식민치하 30년, 해방 70년… 백 년을 하루 같이 싸운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이 나라가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더 근본적인 장애물은 한국정부였다. 소송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원고들의 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원고들은 청구권협정에 대한 한국정부의 장을 확인하기 위하여 사실 조회와 문서송부촉탁 신청을 했지만 한국정부는 외교상의 문제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자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일본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한국정부와 법원의 태도에 피해자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망각의 현장을 기억의 유산으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들은 잘못 꿰인 첫 단추로 ‘한일협정’을 꼽는다. 안보와 경제에 급급해 정치적 타결에 몰두하는 바람에, 정작 먼저 해결해야 할 식민지 지배의 과거사 청산과 극복 방안을 충분히 논하지 않았다. 그 결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일본에 유리한 명분만 우리에게 족쇄로 남았다. 이것은 또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일본을 향해 취했던 전략과도 연관이 있다. 미국은 패전한 일본의 전후 개혁을 주도하면서 책임을 묻는 대신 재건을 도왔다. 한?미?일 안보동맹 강화를 위해 한일회담 타결을 재촉했고, 이 과정에서 과거청산이라는 숙제는 제때를 놓치고 말았다.
이제 일본은 침략전쟁을 반성하기는커녕 동아시아 안보를 지키는 파수꾼을 자처하기에 이르렀고, 분단과 전쟁을 겪은 우리의 불행은 일본 경제부흥을 이끄는 발판이 되었다. 일본은 전후보상에 대한 부담을 지지 않으려고 강제동원의 역사를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한국정부가 일본에게서 받은 청구권자금 대부분이 경제건설의 재원으로 쓰였다고 하니, 우리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눈물과 지금의 경제성장을 맞바꾸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정부는 2005년에 와서야 한일협정문서를 전면 공개하고 청구권협정과 관련한 정부의 입장을 새로 밝혔다. 피해자 구제를 방기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진상규명과 지원법을 제정해 피해자 지원에 나섰다. 피해자들의 용기와 결의가 없었다면, 일본 시민사회가 이에 호응해주지 않았다면,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조직적 시민운동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피해자와 유족, 한일 시민운동가들의 연대로, 길고긴 재판투쟁으로, 공동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일본이 그토록 ‘근거 없음’이라고 부정하는 역사, 그러나 우리 곁에는 비록 하나둘 사라지고 있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고 목소리를 내온 역사의 산증인들이 계신다. 그래서 아직 늦지 않았고, 그러나 더는 늦출 수 없다는 걸 상기하고 싶다. 이 책과 함께 이전에는 다 알지 못했던 가려진 역사의 증인들을 만나고, 그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섬세히 기록하고 영영히 유산으로 간직해야 한다. 제대로 된 우리 역사를 써내야 한다.
각자의 책임을 다하는 길
나와 당신, 우리의 싸움으로
더불어 점점 더 우경화되는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과 시선을 돌아보자. 분노와 적대감, 반일감정만 높이는 것은 앞으로의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 각자 ‘책임질 몫을 다하기’ 위해 더욱 깊이 성찰해야 할 때다. 피해자들이, 유족들이,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자기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듯이, 이제 나와 당신도 무엇으로 각자의 책임을 다할지, 무엇으로 그들의 책임을 따져 물을지 결정할 때다. 마음이 뜨거워져서 저만치 달려 나가고 있더라도 잠시 이 말에 멈추어 서보길 권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고도 피해자 할머니·할아버지들께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지만, 모든 일본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가 피해자 할머니·할아버지를 도와 소송을 하는데, 좋은 일본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미워할 때는 자신이 미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어떻게 되길 바라는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차근차근 ‘책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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